본문 바로가기
‘강간죄’ 개정의 모든 것!/연대회의 입장과 자료

[4차 의견서(2019.09.18.)] 성폭력 가해자들이 피해자를 명예훼손, 무고 등으로 역고소하겠다고 위협하게 하는 현행 강간죄 구성요건

by '강간죄'개정을위한연대회의 2021. 2. 25.

[제4차 의견서 (2019. 9. 18)]

성폭력 가해자들이 피해자를 명예훼손, 무고 등으로

역고소하겠다고 위협하게 하는 현행 강간죄 구성요건

: “형법 제297조 강간죄의 구성요건을 ‘동의’ 여부로 개정할 것을 촉구합니다”

 


형법 제297조는 폭행, 협박을 이용하여 강간하는 행위만을 강간죄로 규정하며, 대법원은 강간죄가 성립하기 위한 폭행, 협박의 정도를 ‘최협의’ 폭행, 협박으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상대방의 반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하는 수준의 폭행, 협박을 이용한 경우라야 강간죄에 해당됩니다.

현행 형법 하에서 비장애성인에 대한 성적 침해가 범죄가 될 수 있는 경우는 강간,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준강간뿐입니다. 즉, 술에 만취하였거나 정신을 잃고 있는 경우가 아닌 이상, 상대방의 저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폭행, 협박을 사용한 강간은, 업무상 위력이 입증되지 않으면 범죄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법은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성관계를 하기 위해 상대방의 저항을 곤란하게 하는 수준의 폭행, 협박을 사용하는 행위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성폭력 상담소에 접수되는 상담 사례의 70% 이상이 직접적 폭행, 협박이 없는 사례였던 데서도 드러나듯, 저항을 현저히 곤란하게 하는 수준의 폭행, 협박이 없었더라도 자신이 원하지 않는 성관계를 상대방이 억지로 한 행위를 성폭력이라고 인식하는 것이 일반인의 법감정입니다. 지금 시대의 평범한 사람들은, 자신이 성관계를 원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강제로 성관계를 시도하였을 때, 이를 성폭력 피해로 경험하고, 형법이 개입할 것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형법은 이러한 일반인의 법감정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일반인들의 성폭력에 대한 인식과 형법의 처벌 범위 사이의 간극은, 성폭력 피해를 경험하고 법이 개입해주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을 보호하지 못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그들을 피의자의 지위에 서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바로 성폭력 피해자를 의심하고, 성폭력 무고 혐의를 씌우는 것입니다.

지난 7월 발표된 성폭력 무고죄 검찰 통계에 따르면, 성폭력 무고 고소 중에서 82.6%는 불기소처분으로 종료되었습니다. 성폭력 무고 고소로 검찰이 기소한 사건 중에서도 15.5%는 무죄가 선고되었습니다. 즉,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상대방이 거짓으로 성폭력 피해를 주장하는 것’이라면서 상대방을 무고죄로 고소한 사건 중에서 실제로 성폭력 무고로 밝혀진 사건은 극히 드물다는 것입니다. 이로부터, 성폭력으로 무고를 당했다는 고소 중에서는, 진정한 무고 피해를 입은 경우보다도,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성관계를 억지로 했으면서도 상대방을 무고죄로 고소하는 경우가 훨씬 많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성폭력 가해자가 가해를 인정하기는커녕 성폭력 피해자를 무고로 고소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 법에서 성폭력이 인정되는 범위가 매우 좁아서 범죄를 입증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본래 무고죄는 상대방이 형사처분을 받게 하기 위해 허위 사실을 신고할 때라야 성립합니다. 하지만, 성폭력과 같이 범죄가 인정되는 범위는 좁고 피해자에 대한 의심은 사회적으로 널리 퍼져 있는 사건에서는, 피해자가 스스로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피해를 ‘입증’하지 못하였다는 이유에서 무고 혐의를 받고 거꾸로 수사 대상이 되는 문제가 드물게 발생하기도 합니다. 성폭력 가해자 측에서 이러한 현실을 악용하여, 피해자가 피해를 주장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성폭력 무고 가해자로 몰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법이 성폭력의 성립 범위를 좁게 인정한다는 점은, 성폭력 피해자에게 명예훼손, 무고 등으로 역고소를 하겠다는 성폭력 가해자의 위협을 더 수월하게 만들어 줍니다. 성폭력 피해자가 자신의 경험을 성폭력 피해라고 생각하더라도 우리 법이 인정하는 성폭력범죄에는 해당되지 않는 경우가 많고, 그럴 경우 피해자는 성폭력 피해를 입증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최협의의 폭행, 협박을 이용한 행위에만 강간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형법의 태도는 일반인의 법감정과 동떨어진 기준으로서, 성폭력 피해자를 무고 가해자로 둔갑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성폭력 피해자가 무고로 처벌 받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고 하더라도, 성폭력을 신고했다가 역고소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는 성폭력 피해자에게 큰 위협이 됩니다. 무고 가해자로 몰린 성폭력 피해자가 결국에는 불기소처분이 된다고 하더라도, 성폭력 피해자가 도리어 무고죄 혐의를 받고 수사 대상이 되는 것은 피해자에게 극심한 고통을 주며, 우리 사회의 수많은 피해자들을 침묵하도록 만듭니다. 

성폭력의 입증이 어렵고 성폭력 성립 범위가 좁을수록, 더 많은 피해자들은 자신의 피해 사실을 말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에 <‘강간죄’ 개정을 위한 연대회의>는 형법 제297조 강간죄의 성립 요건을 ‘폭행, 협박’에서 ‘동의 여부’로 전환하여 성폭력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을 형법 안으로 수용하고, 피해를 입증하지 못하여 겪을 수 있는 위험 때문에 자신의 피해 경험을 말하지 못하도록 하는 일체의 장애물을 제거할 것을 촉구합니다.


2019. 09. 18. 
‘강간죄’ 개정을 위한 연대회의
(총 209개 단체/중복기관수 제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