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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간죄’ 개정의 모든 것!/연대회의 입장과 자료

[기고(2021.02.06.)] 원치 않는 성관계는 있었지만, 강간은 아니라는 모순 _ 한겨레

by '강간죄'개정을위한연대회의 2021. 2. 26.

[한겨레] 기획 강간죄를 묻는다 ③

원치 않는 성관계는 있었지만, 강간은 아니라는 모순

www.hani.co.kr/arti/society/rights/982121.html

 

원치 않는 성관계는 있었지만, 강간은 아니라는 모순

[토요판] 기획강간죄를 묻는다 ③강요·폭력·차별 없는 ‘성적 권리’나와 상대방 동일하게 보장돼야서로를 같은 인격체로 이해하면‘동의’ 확인은 자연스러운 과정성폭력 범죄에 폭행·협박

www.hani.co.kr

 

강요·폭력·차별 없는 ‘성적 권리’
나와 상대방 동일하게 보장돼야
서로를 같은 인격체로 이해하면
‘동의’ 확인은 자연스러운 과정

성폭력 범죄에 폭행·협박 대신
현재·의식·계속적 동의 보는 캐나다
국제 인권기구들은 한국 정부에
강간죄 구성요건 변경 지속 요구

 

사진 : 혜영

 

세계보건기구(WHO)는 성적 건강을 ‘성과 관련하여 신체적, 정서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안녕한 상태’로 정의한다. 성적 건강을 달성하려면 섹슈얼리티와 성적 관계를 긍정하고 존중하는 접근을 해야 하고, 강요·차별·폭력 없이, 즐겁고 안전한 성적 경험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성적 건강은 ‘성적 권리’를 존중할 때라야 달성될 수 있다.

 

성적 권리란 무엇인가

 

성적 건강을 달성하기 위한 성적 권리는 아직 우리 사회에 생소한 개념이다. 그동안 성과 관련된 권리는 기껏해야 ‘성폭력 피해를 입지 않을 권리’ 수준에서 논의되었다. 이 같은 소극적인 단계를 넘어 적극적인 의미를 담은 성적 권리가 이야기될 때에도 성적 권리는 대개 성적 욕구 충족의 요구와 동일시되곤 하였다. 이때 충족되어야 마땅하다고 주장되는 욕구는 이성애자 남성의 성적 욕구에 국한된다. ‘성을 구매할 권리’, ‘야동 볼 권리’ 같은 주장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다. 이런 종류의 ‘권리’ 주장에서는 성적 교류에 있어 상대방의 존재가 지워지거나, 인격체로서의 상대방은 존재하지 않는다. 상대방은 단지 대상물일 뿐이며, 권리는 성적 권리를 주장할 권력을 가진 주체만이 보유할 ‘자격’을 갖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성적 권리는 상대방을 지워버린 채 자신의 욕구만을 내세우는 권력을 보호하려는 개념이 아니고, 소극적으로 성적 폭력을 당하지 않을 권리만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성적 권리 중에서 ‘성폭력 피해를 입지 않을 권리’의 근거로 제시되는 성적 자기결정권의 핵심은, 내가 원하는 사람과, 내가 원하는 방법으로, 내가 원하는 시기에 성적 교류를 할 권리를 포함한다. 그런데 상대방이 있는 성적 행동이라면 마땅히 상대방의 의사도 존중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다시 말하면, 성적 권리는 내가 원하는 사람과 함께, 그 사람의 자유로운 동의하에, 나와 그가 합의하는 방법으로, 나와 그가 원하는 시기에 성적 교류를 할 권리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또한 성적 권리는 어떠한 강요·폭력·차별도 없이, 안전하고 만족스러운 성적 생활을 보장받을 권리, 자신의 몸과 욕구를 자유롭게 탐색하고, 이해하고, 긍정할 수 있는 권리를 포함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상대방이 있는 성적 교류에서 이와 같은 성적 권리는 상대방에게도 동일하게 보장되어야 한다. 상대방을 성적 도구가 아닌 인격체로 이해할 때, 성적 동의의 확인은 성적 교류에 자연스럽게 수반되는 과정이다. 그러나 우리 법이 성폭력을 정의하는 방식은, 성적 권리를 보장하기에 부족하다.


형법에서 성폭력 범죄의 기본이 되는 ‘강간’은 상대방의 반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하는 폭행·협박을 이용하여 성교한 때라야 성립한다. 폭행·협박을 사용했더라도 반항을 ‘현저히’ 곤란하게 하는 수준이 아니었다면 강간이 아니고,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성교를 했더라도 폭행·협박이 입증되지 못하면 강간이 아니다. 이는 곧, 우리 법이 상대방이 원하지 않았음이 명백하더라도 일방적으로 강행한 성교, 폭행·협박을 하긴 했지만 상대방의 반항을 ‘현저히 곤란’하게 하는 수준까지는 아닌 성교를 합법의 영역에 두어 ‘허용’한다는 뜻이다. 폭행·협박이 없더라도 성폭력 범죄가 성립할 수는 있지만, 피해자가 어리거나, 장애가 있거나, 업무·고용 등의 관계로 피해자가 가해자의 보호·감독을 받는 경우 등에만 그렇다. 이러한 불합리 때문에 국회에서도 강간의 정의를 폭행·협박에서 동의 여부로 바꾸는 형법 개정안이 여러 차례 발의됐다.


성적 동의를 확인하는 과정을 상대방에게 차를 권하는 상황에 빗댄 짧은 애니메이션이 있다. 유튜브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내가 좋은 차를 갖고 있어서 상대방에게 꼭 끓여주고 싶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에게 차를 내어주기 전에는 먼저 차를 마시고 싶은지 확인해야 한다. 상대방이 좋다고 하면 차를 만들어줘도 괜찮다. 반면 상대방이 싫다고 하거나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일 때 강제로 마시게 해서는 안 된다. 상대방이 좋다고 해서 차를 만드는 도중에도 상대방이 마음을 바꾸어 마시지 않겠다고 하면, 역시 차를 강제로 마시게 해서는 안 된다. 당연한 일이다. 성적 동의를 판단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차 대신 성적 행동으로 바꾸기만 하면 된다. 성적 행동을 하기 전에는 상대방의 의사를 먼저 확인해야 하고, 상대방이 거부하거나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이는데도 사실은 원할 것이라고 간주하고 성교를 강행해서는 안 된다. 상대방이 마음을 바꾸었을 때도 강제로 성교를 지속해서는 안 된다. 이 또한 당연한 것으로 이해되어야 할 일이다.

 

일상의 얼굴을 한 성폭력

 

동의를 기준으로 성폭력을 판단하는 캐나다 법원은, 성관계에서 현재적·의식적·계속적 동의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성관계에 대한 동의는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성관계가 이루어지는 시점에, 각각의 행위에 대하여 존재해야 하며, 언제든 철회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계약서 쓰고 섹스하라는 말이냐’는 비아냥거림처럼 반복적으로 의사를 묻고 기록하라는 말이 아니라, 상대방을 나와 동등한 인격적 존재로 인식하고, 상대방의 거부나 불편함이나 고통에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감정적 교류를 지속하라는 의미이다.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하고자 노력하고, 거부를 표하면 중단하라는 의미이다.


우리 사회는 성폭력을 용납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많은 이들이 분노를 나누는 사건은 강제성이 명백한 사례에 집중되어 있다. 이 때문에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성폭력 사건에서 ‘순결하고 보호할 가치가 있는 피해자’와 ‘악마 혹은 정신병자로서의 가해자’라는 구도가 어렵지 않게 형성된다. 그러나 수많은 성폭력들은 일상의 얼굴을 하고 있다. 명확한 강제성을 요구하고 폭력적 가해자를 비정상화하는 단순화된 구도에 매여 있는 한, 그 범주를 벗어난 대부분의 성폭력은 어떻게든 정당화되고 변명에 성공하기 마련이다.


종종 무죄에 도달하는 유형 중 하나는 집요하고 반복적인 요구에 의한 성폭력이다. 이런 사건들의 판결문을 살펴보면, 가해자의 태도는 얼핏 동의를 구하는 것도 같지만 사실은 매우 일방적인 경우가 많다. 상대방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욕구 충족을 요구하며 집요하게 성관계를 요구하고 그 과정에서 상대방에게 심리적인 부담과 나아가 죄책감마저 차곡차곡 쌓아올리며,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종국에는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일방적인 성적 행동을 하는 것이다. 이런 사례들에서는 폭행·협박이 명확히 나타나지 않고 이에 따라 상대방의 저항 행동도 강력하게 표현되지 않는다. 하지만 피해자는 반복적으로 거부 의사를 표현하였음이 판결문 곳곳에 드러나 있다. 성적 권리의 침해가 분명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성폭력 범죄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무죄 판결문의 ‘원치 않는 성관계는 있었지만, 강간은 아니다’라는 문장이 가능한 것은, 형법이 폭행·협박이 있어야만 강간이라고 정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 인권기구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강간 개념을 ‘동의가 없는 성관계’로 바꿀 것을 요구했다. 2018년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대한민국 정부에 대하여, 폭행·협박이 아닌 동의 여부로 강간죄의 구성요건을 변경할 것을 권고했다. 성관계를 ‘하는 자’가 그 ‘대상’에게 하는 행위로 보는 태도에서 벗어나 모든 사람의 성적 권리를 보장하려면 불법적인 성폭력의 개념부터 수정해야 한다.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