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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간죄’ 개정의 모든 것!/'강간죄' 개정 관련 언론 보도

(25.3.24) [자유발언대] 이제는 정말 강간죄 개정이 되어야 할 때

by '강간죄'개정을위한연대회의 2025. 3. 25.

 

[자유발언대] 이제는 정말 강간죄 개정이 되어야 할 때 (로스쿨 타임즈)

이도경 변호사(사단법인 한국성폭력상담소)

 

https://www.lawschool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5155

 

[자유발언대] 이제는 정말 강간죄 개정이 되어야 할 때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와 법률상담을 진행하다 보면 하기 쉽지 않은 말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선생님께서 겪으신 일을 고소하시더라도, 현재 한국 법상 가해자가 성폭력으로 처벌될 가능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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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사건의 피해자와 법률상담을 진행하다 보면 하기 쉽지 않은 말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선생님께서 겪으신 일을 고소하시더라도, 현재 한국 법상 가해자가 성폭력으로 처벌될 가능성이 낮다.”라는 말이다. 가해자의 행동이 옳다거나 당신이 경험한 피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법의 한계로 강간죄가 인정되려면 폭행이나 협박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하는 설명을 덧붙인다. 피해자의 성적자기결정권이 침해당한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도 법적으로 대응하기는 어렵다는 식의 상담을 해야 하는 날이면 변호사라는 직업에 대한 회의가 몰려오기도 한다.

 

 

내가 상근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단체인 한국성폭력상담소는 1991년 개소하여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고 왜곡된 성인식과 성문화를 바꾸기 위한 사회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시민사회단체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2024년 상담통계1)에 따르면, 2024년 한해 동안 1,492건의 성폭력 피해 상담을 진행하였고, 240명이 강간죄 유형(강간, 유사강간, 준강간, 특수강간, 강간미수)의 피해로 상담을 받았다. 그런데 강간죄 유형의 피해로 상담을 받은 피해자의 상담 내용을 살펴보면, 법적으로 폭행·협박 구성요건에 해당함을 인정받기 어려운 피해 상담이 87.2%(190명)에 달했다.

(예비)법률가의 시각에서는 조금 의아할 수도 있겠다. 폭행이나 협박이 없는데 어떤 방법으로 성적자기결정권이 침해되었다는 것일까? 가령 다음과 같은 사례를 생각해보자.

① 피해자와 가해자는 대학 동아리의 선후배 사이이다. 해당 동아리는 선후배 간 결속이 끈끈하고 다루는 주제가 전문적이어서, 졸업 후 취업을 할때에 주요한 약력으로 쓰이고 현직에 있는 선배들의 입김도 세서 인기가 많은 동아리이다. 대신 그만큼 후배들이 선배에게 깍듯하고 경직된 분위기가 있다. 동아리 선배인 가해자는 동아리 후배인 피해자에게 여러 차례에 걸쳐 피해자가 동의한 적 없는 신체접촉을 하였지만(기습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피해자는 혹시라도 동아리 활동에서 배제될까 두려워 문제제기를 하지 못하였다.

② 피해자와 가해자는 사실혼 관계이다. 피해자는 아직 취직을 하지 못하여 집안일 등을 하며 가해자에게 생계를 의존하고 있다. 어느 날 피해자는 너무 피곤하여 일찍 잠을 자려 하였는데 가해자가 성관계를 요구하였고, “너무 피곤해서 오늘은 하고 싶지 않다.”고 하였지만 “그것도 안해줄거면 여기 내 집이니까 나가.”라고 하며 성관계를 시도하는 가해자에게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못하였다.

위 두 가지 사례는 모두 현행법상 성폭력으로 인정되기 어렵다. 피해자가 비장애인 성인인 경우 ‘위력’은 업무상 관계에서만 인정이 되는데, 대학 동아리 선후배 관계는 업무상 관계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고, ‘경제적 사정에 의해 의사가 제압된 경우’ 역시 현행법의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 현장에는 이러한 사례들이 너무나도 많다.

지난 2월, 경향신문의 보도로 여성가족부가 2023년 1월 제3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의 일부로 비동의강간죄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가 정부와 여권의 반발로 철회한 뒤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이 해당 정책을 기획했던 여가부 직원들을 감찰 조사했던 사실이 밝혀졌다2).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가 2018년부터 한국 정부에 비동의 강간죄 도입을 권고해왔고, 국내에서도 그에 대한 여러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면서 자연스럽게 기본계획에 포함된 정책을 지극히 정치적인 이유만으로 무효화시킨 것이다.

강간죄의 기본적인 구성요건을 비동의로 두는 것은 국제적인 흐름이다. 독일, 영국, 스웨덴 등 여러 나라에서 동의 없는 성적 침해를 강간죄로 규정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와 유사한 법 체계를 가진 일본에서도 2023년 6월 16일, 강간죄의 명칭을 ‘부동의성교죄’로 바꾸고 동의하지 않은 성적 침해를 처벌할 수 있게 하는 형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국내에서도 비동의 강간죄 도입과 관련하여 이미 여러 법학자들의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3). 성폭력 사건의 재판에서는 피해자의 동의 여부가 피고인의 고의나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등과 관련하여 이미 ‘판단’되고 있다.

강간죄의 구성요건에 ‘동의 여부’를 포함시키는 강간죄 개정안은 20대 국회에서 10건, 21대 국회에서 3건이 발의되었지만 모두 회기 만료로 폐기되었다. 여전히 수많은 피해자가 법의 공백으로 성적 자기결정권이 침해당하였음에도 자신의 피해를 법적으로 인정받고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하루라도 빨리 법률상담을 하며 “당신의 피해는 이러한 법률에 의해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이제는 정말 강간죄 개정이 되어야 할 때다.

 
1) <2024년 한국성폭력상담소 상담통계 및 상담동향 분석>, 한국성폭력상담소, 2025. 03. 06.
2) “대통령실, ‘비동의강간죄 도입 검토’ 여가부 직원 감찰”, 경향신문, 2025. 02. 19.자 보도 (https://www.khan.co.kr/article/202502190600035)
3) 괄호나 각주로 제시하기에는 수많은 연구가 있어 생략하였다. 궁금하신 분들은 구글에 비동의강간+논문으로 검색해 보시기를 바란다.


출처 : 로스쿨타임즈(http://www.lawschooltimes.com)